처음 이 영화를 접한 건 대학생 때였다. 개봉 당시 주변에서 “생각보다 진짜 좋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지만,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유로 한동안 미뤄뒀다. 그러다 어느 날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첫 장면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끝까지 보게 됐다. 그게 바로 '드래곤 길들이기'였다.
스토리: 단순하지만 진심이 담긴 이야기
줄거리는 단순하다. 바이킹 마을의 약골 소년 히컵이 전설 속 드래곤과 우정을 쌓으며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다. 뻔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영화는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있어 완벽한 균형을 잡았다. 히컵과 투슬리스(드래곤)의 관계는 처음엔 경계와 두려움으로 시작되지만, 점차 진심이 오가는 친구가 되어간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히컵이 투슬리스에게 손을 내밀고, 드래곤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코끝을 맞대는 장면이다. 말 한마디 없지만, 그 장면 하나로 둘 사이의 신뢰가 얼마나 커졌는지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연출이 많다. 대사를 빌리지 않고도 감정을 전달하는 힘. 그것이 이 영화가 단순한 어린이 영화가 아닌 이유다.
그리고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이해’와 ‘변화’다. 적으로만 여겼던 존재를 다시 바라보는 시선, 전통을 깬 용기, 가족과의 갈등과 화해까지. 이 모든 메시지를 억지스럽지 않게 풀어냈다. 그래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된 것 같다.
캐릭터와 감정: 살아있는 인물들
히컵이라는 캐릭터는 흔히 보던 영웅상과는 다르다. 힘이 세지도 않고,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가 가진 건 ‘다르게 보는 시선’이다. 마을 사람들은 드래곤을 두려움과 파괴의 대상으로만 봤지만, 히컵은 그 이면을 봤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다.
투슬리스 역시 단순한 ‘괴물’이 아니다. 감정을 느끼고, 상처받고, 놀라고, 기뻐한다. 특히 눈빛 묘사는 정말 탁월하다. 말을 하지 않지만,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충분히 감정을 전달한다.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생명체처럼 느껴졌다는 건, 제작진의 디테일한 감정 연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 조연들도 살아 있다. 히컵의 아버지 스토이크는 강인하지만 아들을 이해하지 못해 갈등을 빚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변화하고, 결국 서로를 받아들인다. 이런 관계의 변화가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친구들 또한 개성 강한 캐릭터로 영화에 활기를 더한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이 영화가 특정 연령대를 타겟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른들은 히컵과 아버지 사이의 감정에 공감하고, 아이들은 드래곤과의 우정에 마음이 간다. 연령에 따라 다른 포인트에서 감정이입이 가능한 영화다.
영상미와 음악: 스토리를 완성하는 두 요소
애니메이션이라 해서 영상미가 가볍지 않다. 드래곤이 하늘을 나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내가 공중을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히컵과 투슬리스가 처음 함께 나는 장면은 압권이다. 빠른 속도감, 카메라 워킹, 바람을 가르는 소리까지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게 바로 음악이다. 존 파웰의 OST는 이 영화를 ‘작품’으로 완성시킨 주인공 중 하나다. 특히 <Test Drive>, <Romantic Flight> 같은 곡은 영화를 본 후에도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감정을 과하게 끌어내는 음악이 아니라, 장면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만든다.
색감도 상당히 세심하게 잡혀 있다. 드래곤들의 디자인은 각각 다른 개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고, 어두운 숲이나 밤하늘의 표현도 사실적이다. 자연환경의 디테일 역시 실제 풍경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교하다. 스토리만큼이나 시각적인 즐거움이 컸던 영화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을 넘어선, 인생영화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가족, 친구, 용기, 변화, 이해. 이 모든 요소가 한 편의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처음 볼 땐 우정 이야기였지만, 두 번째 볼 땐 가족 이야기로 다가왔고, 세 번째 볼 땐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만큼 여러 번 볼수록 새로운 감정이 피어나는 영화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꼭 한 번 감상해 보길 추천한다. 특히 감정에 지친 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날이라면 더더욱. 따뜻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이 영화는 분명 당신 마음 어딘가를 두드릴 것이다.